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오늘... 후배랑 이야기 하다가... 후배가 외롭다고 느낀적이 없냐고 물어보더라..

오늘 후배가 외롭다고 느낀적이 없냐고 물어봤다.

외로움이라...

27년을 아직 가득 채우지 못한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태어나서 1년을 가득채우면 2살이 된다...)
난 언제나 외로웠던것 같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실명하시기 전에는 두명의 아들을 그렇게 이뻐하셨단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2살때 실명을 하셨고
나는 안타깝게 7살때의 기억상실증으로... 그 이전 기억이 없다.
(어렸을때 놀다가 죽을뻔 하면서 필름이 흘러가는 도중 캣치한 장면은 제외..)

그러고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 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되시면서
어머니가 장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아버지 병수발을 들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동생인 나의 몫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친구들과 방과후에 어울려서 놀아본 기억은 별로 없다.
친구(?)들과 야구는 했었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야구라는 스포츠는 다수의 인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난 그들 대부분을 친구라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초등학교 동창이다.
그때 같이 야구를 했던 애들 중 현재까지 연락하는 애는 단 한명이며
얘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친구였기 때문에
사실상 그때 야구를 하면서 만든 친구는 전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의 학창시절은
대부분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와서 아버지 병수발을 하는것이었다.
물론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와도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학창시절의 나의 친구는 집에 있는 책들뿐이었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셨고, 형은 주로 놀러 다녔다.
난,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외로웠다.

중학교 2학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하지만... 이미 중학교 2학년이다.
사실상 이미 다른 학우들은 자신들끼리의 그룹이 있었다.
나는 그런 그룹이 없었다.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애들이 있었다 해도 난 겉돌았었다.

이미 5년동안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친구와 마음 터놓고 놀거나, 친하게 지내거나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친구들과 놀려면 일정 수준의 돈이 필요했다.
다른 모든 친구들은 용돈이 있어, 그것으로 놀았지만...
우리집은 가난했다.
용돈이라는 것은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나는 매우 내성적이었다.
중학교를 남녀공학을 나왔지만
중학교 3년동안 학교에서 여자애들과 말을 섞어본 횟수는 단 3회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남녀공학으로 진학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있던 그 친구는
이미 중학교때부터 다른학교였다.
물론, 고등학교도 다른학교였다.

이제와서 고등학교 3년을 되새겨보면...
역시나 나는 외로웠다.
고등학교때 별명 람보.
그때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별명은 코만도.
코만도는 단지 람보와 같이 다닌다는 이유로 코만도가 되었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친구라는 단어에는 의문이 생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거의 만난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가 군인일때, 그리고 걔가 군인일때 두어번 만났을까..
물론 지금은 전혀 연락이 안된다.

사실상 학창시절에 친구들끼리는 그룹이 지어진다.
학년이 올라가면서도 대부분 그 그룹들과 같이 밥을 먹거나 그러지만...
사실 나는 매일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은 없었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고등학교 동창들은 지금도 나를 만나면 반갑게 맞이해준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로부터 연락이 먼저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끔 메신저에서 말을 거는 경우는 있지만
얘는 고등학교때는 안친했다.
대학교를 같은 학부를 나와서.. 그나마 이야기 하고 지내는것 같다.
물론, 같은학년에 재학한적은 1학년 단 한번 밖에 없다. (...)
사실상 그애와 나를 친구사이라고 부르기에는...
같이 밥을 먹은 횟수도 거의 없거니와
같이 술을 먹은 횟수도 거의 없다...
'동창'이라는 의미에서의 '친구'라는 관계인 듯 하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시기를 거치면서 얻은것 하나는
더이상 여자애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우 내성적인 성격에서 딱히 내성적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활동적인 성격도 아닌, 그냥 애매한 성격이 되었다.
고등학교 이후부터 나를 알고 지낸 애들은
내가 중학교때까지 내성적이었다,
나 중학교 3년동안 학교에서 여자애들과 말을 섞어본것은 단 3번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면...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때도 서클애들 이외에는
여자애들을 거의 상대 안하고 지내왔다.

대학교 1학년.
그 오랜친구와 같은 학부에 진학했다.
물론 그 친구는 아무 이유 없이... 내가 가는 학부라서 따라왔다.
그리고 그애는 수/차석 입학으로 학비를 면제받고 입학을 했다. (...)

2002년...
거의 항상 그애와 같이 다녔던 것 같다.
동아리, 점심, 하교.. 대부분 그애와 같이 지냈었다.
하지만 2학기부터였나... 그 친구가 학교를 잘 안나오기 시작했다.
'라그나로크'라는 게임에 빠진 탓이다.
물론 이애와는 중학교때도 간혹 만나서 같이 PC방에 가거나 했었지만...
사실 나는 중학교때도, 고등학교때도 돈이 없어...
오랜시간 어울리지 못했다.
자주 신세를 졌다...
그래서... 고등학교때 신문배달을 하면서 월급을 받아서
1주일만에 이애랑 같이 탕진해버렸다.
왜냐... 나는 이애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교 올라가서도 나는 여전히 가난했고,
게임 정액비따위를 낼 돈은 없었다.
나는 학기중에는 아르바이트나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학기중에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방학때 노가다를 해서 모은 돈으로 학교를 다녔다.
따라서... 학기중에 쓸 돈 따윈 없었다.
PC방, 게임정액요금 따위는 나에게는 사치였다.

이 애가 없을때는 나는 동아리의 1년 선배누나랑 자주 같이 다녔다.
하지만 1학년 끝날때쯔음에 이 선배와 위의 친구가 교제를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대학교 1학년때 나는 학부 생활은 어짜피 군대 갔다오면 아무도 나를 모르기 때문에
동아리에 집중했다. 동아리는 선후배라는 관계가 계속 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군대를 갔다와도 나를 맞이해줄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1학년때 학부에서는 완전한 outsider 였으며
1학년때 그렇게 투자했던 동아리 역시... 겉돌았었던 것 같다.
항상 같은 사람과 다녀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었던 듯하다.
그리고 동아리 동기는 대락 서귀포파들이 똘똘 뭉쳐 있었다.
물론... 내가 좀더 마음을 열고 다가갔다면 다들 나를 받아주었을 착한 애들이었겠지만
나는... 이미 고3때까지 지난 9년동안 그런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중간에 몇가지 우여곡절을 겪고...

나는 군대를 갔다.
군대 역시 보통... 동기들끼리는 똘똘 뭉친다고 한다.
훈련소에서 같은 중대로 4명의 동기가 발령 받았지만
우리는 각기 다른 소대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4명중에 3명이 제주도였지만...
우리는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후임들이 들어오면서 얼마후
내 동기가 우리소대로 들어왔다.
후반기 교육을 받고 오느라 후임보다 늦게 들어온 것이다.

같은 소대에 동기가 있으면 참으로 든든할텐데..
나와 그 동기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많이 다퉜던것 같다.
오죽하면... 고참들.. 특히 아버지 군번이 동기끼리 싸우지 말라고 했을까...
여하튼, 난 군대에서도 겉돌았었던 것 같다.

전역하고 1주일도 쉬지 못하고 나는 PC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복학했을때의 학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달도 되지 않아서 나는 야간 12시간 근무에 쉬는날 없는 PC방 아르바이트 생이 되었다.
쉬는 날이 없었기에 당연히 아는 애들과 저녁에 술 한잔 할 시간이 없었으며
겉도는 생활은 계속 되었다.


2006년 복학을 하였다.
이미 나는 13년동안 겉도는 생활을 해왔다.
이게 어디 가겠는가...
나는 또다시 겉돌기 시작했다.
특히 1학기 중간고사때까지 나에게 말을 거는것은
같은 복학생들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점심을 혼자 먹는 사람이었다.

우연히 나는 이 해 여름, 외게인이라는 보드게임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고
여자친구가 생겼다.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나에게도 드디어 그룹이라는 것이 생기는가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해 가을,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동호회 활동도 애매해졌다.
동호회 활동은 겨울에 다시 하기 시작했지만... 또 다시 겉돌기 시작했다.

2007년
2006년에 전역한 친구가... 복학을 하였지만, 다른과로 전과를 하고 말았다.
그래서 자주 어울릴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이미... 고등학교때 나보다 더 친구다운 친구를 얻은 상황이었다.
둘은 참 친했고... 지금도 참 친하다...

순수하고 귀여워서 맘에 들어했던 후배 하나가 있었다.
하지만 자주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해 1학기에 올 A+을 받아서 여름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A급 장학금을 타지 못했다...
외국어 성적을 내지 않았으며, 자격증도 내지 않았고, 봉사점수도 내지 않아서..
우선순위에 밀린 것이다.
나는 휴학을 하게 되면서... 자연히 그 후배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라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하다... 그정도로 가까웠던 사이도 아니었을 것이다.)

2007년 9월 나는 대경엔지니어링에 입사하여
또다시 야간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일본어 능력시험 2급을 따기 위해 일본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정말 매우 오랜만에 일본어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급을 도전했다... 3급은.... 내 자존심이 용납치 않았다...)
이 시기는... 나를 지 마누라쯤으로 알고 지내던.. 지금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애와 친해졌다.
내가 아침 9시에 퇴근하여 일본어 학원에가서 수업이 끝나면.. 대략 11시가 넘었었다.
그럼 항상 전화와서 '나 배고파... 나 뭐 먹고싶고... 우리집에 뭐뭐 있어... 들고갈게'
라고하고 전화를 끊으면... 나는 나머지 모자란 재료를 장을 보고 사서 갔다.
이런놈이 하나 있었고, 여자애 하나와 많이 친해진것도 이쯤이었다.
하지만 제주도 애가 아니었기에 잘 되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도 네이트온에서 가끔 이야기는 하지만...
글쎄...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 정도인것 같다.

2007년 12월...
나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다. -_-. 인원 감축이라나...
물론 내가 일을 못해서 그런건... 아닌것 같다. -_-
애초에 계약직이었으며, 말단에 제일 짬밥이 안되었을뿐....
어쨌던 12월을 끝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위에 바로 언급한 여자애와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것도
2007년 12월이었다.

2008년 2월... 나는 Daum communication Global Media Center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6개월 아르바이트였으며, 딱 8월에 끝나서 9월에 복학하기에는 적기인 아르바이트였다.
후배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게 되면서 자연히 위의 내 남편쯤 되는 녀석은 나에게 더이상
밥달라는 소리를 못했다.
난 돈벌려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2008년 9월 나는 다시 복학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후배들에게 휴학하기 전보다 더 어려운 선배가 되어있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랩실 생활이란것을 해볼까 하고 들어갔던 네트워크 랩실에서도
나는 여전히 어려운 존재였다.
(사실 같은 학년에서 최고령쯤에 속했다 -.-;)
역시 나는 겉돌았고, 여전히 혼자 밥을 먹고 다녔다.

2009년 3월초.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최고렙(...)이 되어있었고
이미 나는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애들은 없는 범접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네트워크 랩실에서 인공지능 랩실로 둥지를 옮겼다.

어느날 과방에 들어갔을때 당차게 인사하던 두명의 새내기를 기억한다.
그 중 한명은 지금 현재, 같이 daum 에서 일을 했던 그 후배의 여자친구이며
다른 한명은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하게 만든... 그 외롭다고 느낀적이 없냐고 물어본 애다.
그 애는 우리 랩실로 들어왔지만...
사실 이 인공지능 랩실은... 애매한게...
같은방에 공간이 2개로 갈라져 있다.

랩실에 들어가면 또다른 문이 있고... 그 곳으로 들어가면
대학원생 형과, 나와, 위에 말했던 그 후배가 있었다.
이 3명은 모두 흡연자로..
대학원생형이 랩실에서 피는 담배를 견딜 수 있는 인원이 그 안에 들어가 있었으며
새내기를 비롯한 비흡연자는... 다른 공간에 있었다.

이런 공간적 격리(?!)에 의해 서로 다른 세계를 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4학년으로 애초에 수업도 그렇게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밖의 공간(;;)에 있는 애들은
그 당찼던 애는 남자친구와 대부분 같이 붙어다녔다.
다른 새내기는 역시 랩실에서 자주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른 세명 역시... 랩실에 붙어있는 시간이 적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나마 이시기에는 내가 누군가랑 밥을 먹은적이 가장 많았던 시기이다.
여자 후배였는데...
사실 애초에 둘이서 따로 논적은 단 한번도 없고.
그애 역시... 자기랑 그룹이었던 친구들이 휴학을 해버린터라 같이 지낼 사람이 없어서
나랑 자주 같이 점심을 먹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애초에 우리는 사적으로 연락한적이 거의 없다.
뭐... 얼굴은 이쁘장했지만
우선 걔가 나에대해서 1%의 이성으로 느끼는 감정이 없다는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나도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냥... 같이 다닐 사람이 없는 두명이서... 밥을 같이 먹은적이 좀 있었다는것 정도랄까...
물론 내가 졸업한 이후로 연락은 한번도 하지도 않았고 온적도 없다.

2009년... 4학년 1학기를 끝으로 나는 졸업을 해 버렸다.
고려대 대학원 진학을 염두해 두었었으며,
나는 일부러 실업자의 신분을 만들어 실업자 교육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시기는... 다른 같은 학우들보다 선생님과 많이 친했던 것 같다.
선생님과 같이 퇴근했던적도 많고, 그냥 청소라든지 이것저것 잡일을 좀했더니
수고했다고 밥을 얻어먹은 적도 많다.

물론 둘이서 영화를 본다거나 이런 데이트 따위는 없었... 아 한번 봤던거 같다.
뭐 이때 당시에 선생님은 남자친구가 없다고 속이고 다녔었지만
사실 남자친구가 있었으니 뭐...
선생님과 학생과의 불륜(?!)같은건 없었다.
오해하지 말라... 그선생님과 나는 1살차이다 ㅡㅡ;

이때당시 나는 한무리의 애들과 같이 WoW를 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그 무리의 애들중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놈은 그때도 지금도...
내 남편쯤 되는 (?..) 그놈밖에 없다.
난 그래서... 지금은 그놈을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2010년 나는 고려대 대학원에 진학을 하였다.
그리고 1학기가 지나고 2학기의 중반도 지난 지금...
난 여전히 겉도는 것 같다.

가장 밥을 같이 자주 먹는것은
랩장형이다.
가장 술을 같이 자주 먹는것 또한
랩장형이다.

하지만 둘이 친하냐고 물어보면 아닌것 같다.
모르겠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친분으로 같이 밥먹거나 같이 술먹거나 그런것은 아니라는 느낌만 들뿐이다.
그 형이 없으면 난 여전히 거의 혼자 밥을 먹고 다닌다.
난 여전히 겉도는 생활을 하고 있는것 같다.

물론.
대학원..
모두 바쁘기 때문에 같이 놀거나 할 여유가 없다.
하지만... 서로 '힘들지?' 이러면서 같이 고충을 털어놓으면서 술한잔 걸치는...
그런 동기는 없다.
여전히 나는... 겉돌고
나는 여전히 외로운것 같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내게 친구가 너무 많다고...
나는 이야기한다...
나한테 자기 힘들다고 술 좀 사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난, 20년 이상 겉도는 생활 중이다.

항상....외롭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 너무 익숙해져서...
나는 외로움을 더이상 느끼지 못하는것 아닐까 한다....


외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에게 마음을 100% 열지 못하고 있다.

열 수 있을 것 같았던 친구는... 지금 머나먼 남쪽 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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